1. 개요: 한국법 상 제조물 결함의 입증책임

한국법은 영미법과 유사하게 제조물의 결함(Product Defect)으로 인해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한 경우, 제조물책임법(Product Liability)에 따라 고의, 과실 유무와 관계없이 소비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엄격책임, Strict Liability).  제품 정보와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고 증거방법 수집이 어려운 소비자 보호를 위해, 공평의 원칙에 따른 무과실 책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형사책임이 문제되는 경우, 공평의 원칙에 입각한 입증책임 완화의 법리(Strict Liability)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실체 진실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형사재판은 민사재판과 달리 행위책임의 원칙에 따라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검사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proof beyond a reasonable doubt)'로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고, 원칙적으로 거증책임(burden of proof)도 검사에게 있습니다.

  1. 생활화학제품의 제조물 결함의 예: 가습기 살균제 사건

최근 한국에서 생활화학제품의 제조물 결함과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biocide) 사건으로 불리며 언론에 보도된 가습기살균제 사건입니다.

2011년, 기존의 질병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중증 폐질환 환자들이 다수 발생했고, 이를 인지한 모 대학 병원 의료진들의 신고로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조사 결과, 가습기 내 미생물 번식 등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의 화학성분이 원인으로 지목됐고, 그 인체영향을 확인하기 위한 독성 실험이 실시되었습니다.

당시에 시판 중인 가습기살균제는 양이온성 고분자 계열의 PHMG, PGH 제품군(Type A)과 비이온성 단분자 물질인 CMIT/MIT 제품군(Type B)으로 구별되었습니다(PHMG성분은 S사가 원료를 공급하여 O사가 제조, 판매했고, CMIT/MIT 제품군(Type B)은 S사가 공급하여 A사가 판매 및 유통한 제품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위 각 성분에 대한 동물흡입시험 결과, “PHMG” 및 “PGH” 성분의 폐손상 유발 인과관계가 확인되어 PHMG, PGH 성분 6개 제품 (Type A)에 대한 강제회수 조치가 이루어 졌습니다. CMIT/MIT 성분(Type B)은 인체 독성 영향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이를 판매한 A사 등은 사회적인 논란을 감안하여 자발적인 리콜을 진행 하였습니다.

  1.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형사소송 진행내역

정부의 독성 시험 결과에 따라 2016년 Type A(PHMG와 PGH) 제품을 제조, 판매한 O사 등 기업 관계자들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고, 안전성 검증을 소홀히 한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어 2018. 1. 25.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한편 독성시험에서 폐질환 유발 기전이 확인되지 않은 Type B (CMIT/MIT) 제품 관련 기업은 2016년 기소 대상에서는 제외되었으나, 검찰이 정부(환경부)의 추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2018년 재수사에 착수했고, 2019년 A사, S사 등 해당 제품을 제조, 유통한 기업 관계자 13명이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그러나 2021년 1월, Type B (CMIT/MIT) 제품에 관한 1심 공판에서 법원은 이를 사용하여 폐질환 등의 질병이 발병했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보고, 주의의무 위반 유무를 판단하지 않고 전부 무죄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현재 해당 사건은 검찰의 항소로 항소심 공판이 진행 중입니다.

  1. 생활화학제품의 제조물 결함에 대한 형사소송 시 인과관계의 중요성

위 사건과 같이 제조물(생활화학제품) 결함으로 발생한 대중적 피해에 대한 기업 관계자의 형사사건(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입증이 문제됩니다.

  1. 인과관계: 제조물에 결함과 인적피해 발생 사이
  2. 주의의무위반: 기업 관계자들의 안전성 검증 소홀과 인적피해에 대한 예견가능성

여기에서 인과관계는 주의의무에 관한 판단에 선행합니다. 다만, 일반적인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사상의 경우, 대체로 결함의 존재와 피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백하여 증명이 어렵지 않으므로, 주의의무 유무에 관한 공방이 소송상 주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병원성 세균(박테리아)을 제거하는 모든 살생물제(biocide)는 어느 정도의 독성을 가지고 있고, 사용량이나 용법에 따른 위해도1 가 문제이기 때문에, 이 사건과 같이 생활화학제품의 제조물 결함(독성)으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사상의 경우, 주의의무 위반 유무를 판단하기 전,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이 보다 중요하고, 그 인과관계는 아래와 같이 두 가지(일반적 인과관계와 개별적 인과관계)로 나뉘어 각각이 독자적인 증명 대상이라는 특징을 갖습니다.

  1. 일반적 인과관계: 생활화학제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독성(toxicity)으로 인하여특정 질병이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likeliness)이 확인되어야 하고 이는 과학적 실험을 통해 증명되어야 합니다.
  2. 개별적 인과관계: 개별피해자들이 다른 원인 요소의 개입 없이 그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하여 화학물질의 독성에 노출된 사실과, 그로 인하여 사상의 원인된 특정 질병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위 일반적·개별적 인과관계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없을 때 비로소 주의의무에 관한 판단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즉, 일반적·개별적 인과관계 모두에 대해 충분한 증명이 없으면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판단으로 나아갈 필요 없이 형사책임은 인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앞서 본 예시사건에 관한 1심 판결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일반적·개별적 인과관계 또한 거증책임이 있는 검사가 입증해야 하지만, 위 사건을 수행한 우리 법인은 공소사실과 반대로 일반적, 개별적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사항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 특이적인인과관계 증명 구조의 이해 및 관련 (탄핵) 증거확보
  • 검사가 제시한 화학성분의 독성에 관한 과학적 실험 자료의 증명력에 합리적 의심을 주는 과학적 근거를 가진 반대 증거
  • 교수, 의사, 연구원 등의 전문가 증인(experts)에 대한 증인신문을 통해, 문제가 되는 화학성분의 독성, 피해 발생 관련 역학 조사, 개별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판정과 관련하여 수행한실험, 연구 및 작성한 논문, 보고서 등에 담긴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구체적 검토 및 관련 내용을 신문하여 실험 설계상 오류나 결과적 신빙성에 의문을 도출
  • 피해자 관련, 질병발생의 원인이 되는 기저질환 혹은 유독물질에의 노출 이력 등, 제3의 원인 존재여부에 관한 검토

결국, 생활화학제품, 그 중에서도 살생물제(biocide)의 독성으로 인한 형사사건에서는 주로 주의의무 위반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되는 일반적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사상 사건과 달리 일반적, 개별적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이 보다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Footnote

1 환경 유해 인자의 위해성을 평가하는 절차와 방법에서 나온 것으로, 환경 유해 인자에 노출됨으로써 사람의 건강이나 환경이 악영향을 받게 될 개연성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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